제가 뉴질랜드로 이민을 간지가 한 15년 정도 되었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에 부모님의 결정으로 갔었어요. 정말로 그때는 자연의 오아시스 뉴질랜드가 그렇게 싫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린 나이에 혈기왕성해서 그런지 놀거리가 없다며 새벽에 부모님 몰래 집나와서 새벽을 배회하며 다녔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철이 없었던 것 같네요. 로안이의 흑역사인거죠~
저의 10년전 사진들입니다. 저의 와이프가 이 사진들만 보면 정말 동네 노는 아이 같아서 정말 보기 싫다고 할 정도로 여자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였나봐요. 저 당시에는 저런 스타일이 유행했는데 말이죠. 뉴질랜드에서는 말이죠. 근데 제가 봐도 어른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네요. 꼭 일본이 같아서 말이죠. 저는 항상 듣던 말이 있는데요. 중국인, 일본인, 베트남 인 등 동남 아시아 권의 인종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아마 머리 스타일이 달라질때 마다 그런소릴 들었어요.
그렇게 고등학교 졸업후에 뉴질랜드 영주권이 나오지 않은 상태라서 대학진학을 바로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뉴질랜드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했지요. 식당일에서부터 여러 잡일들은 다해본 것 같네요. 뭐 그런 이야기는 일단은 접어 둘까요? 아직 할 이야기가 많아서 말이죠.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영주권이 나왔어요! 나오자마자 저는 대학에 진학을 해서 VISUAL DESIGN AND ART과 2년제를 들어가게 되었는데요. 정말 제가 배우고 싶었던 적성에 맞는 과를 진학해서 기분이 좋았지요.
나무 목공도 배우고, 시각 디자인, 영상 디자인 등 종합 디자인을 배우면서 나에게 맞는 디자인과를 찾는 것이 었어요. 그중 점수가 제일 좋았던 것은, 영상 디자인하고 목공 디자인이 였어요. 목공 디자인은 처음해보는 거였는데, 나무 가루를 마셔도 재미나더라고요. 손으로 만드는 것을 워낙에나 좋아해서 말이죠.
아무튼 그렇게 디자인 학과 2년제를 끝 맞치고 받은 수료증입니다. 사실상 4년제를 더 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돈을 낭비할 것 같아서 다시 취직해서 일을 하기 시작했죠. 그 후로는 원룸으로 이사와서 한주에 거진 30만원 정도 하는 방에서 혼자 지내게 되었어요. 그때 와이프는 뉴질랜드 비자가 나오지 않아서 한국으로 귀국 상태였었구요. 그렇게 이사하고 렌트비를 충당해야 했기 때문에 일자리를 죽어라 구해서 투잡을 뛰게 되었어요.
오전에는 스시집에서 주6일을 일해서 집세를 마련을 했어야했어요. 정말 이 스시집은 스트레스 엄청 받으며 일을 했어요. 매니져랑 직원들이 대부분 일본인이였으니깐요. 일본어가 가능하기에 취직을 했던거고, 대부분의 일본인 직원들은 엄청 상냥하고 저에게 잘 대해 줬었어요. 하지만! 유독하게 일본인 메니져가 저한테 이유도 없이 갑질을 하더라고요. 몇번이고 싸우고 때려 치우려 했으나 참고 참아야 했어요. 렌트비를 벌어야 먹고 살았으니깐요.
그래도 오후에 일하는 일식당 타누키라는 곳은 굉장히 수월했어요! 주 4~5일 정도로 근무를 했고, 직원들 모두 저를 서포트해주면서 잘 키워 줬었죠. 처음에는 홀서빙, 칵테일바 바텐더로 일을 하다가 쉐프가 저를 유심히 지켜보다가 주방에도 들어와 일을 하라고 제안 하더라고요. 그래서 멀티로 주방~홀~바텐더까지 확보하여 일을 하였죠. 사장이 메니져로 쓰려고 했으나 메니져로 하면 스트레스 받고 그때 버는 것 보다는 벌지 못할 것 같아서 제안은 받아주지 않았어요.
그렇게 1년 반정도 일을 하는데 같이 일하는 직원이 저에게 초대기업 걸리버 중고차 상사에 면접 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해주더라고요. 경력을 생각해서 들어가는 거고 오전에 근무하는 스시집도 너무나도 스트레스가 과해서 그만 두고 싶었기도 했기 때문에 면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걸리버라는 기업에서 저는 한국어, 일본어, 영어로 한번에 동시 통역과 영업사원으로 뛰어 다녀야 했습니다. 정말 피터지게 바쁜 기업이 었죠. 저에게는 정말로 큰 경험이 었던 곳이고, 기업이기에 더욱더 힘든 난관들이 많았죠. 친근감 넘치는 점장님 덕분에 회사 생활을 그나마 순조롭게 해내었고 어느덧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시작했어요. 일을 아니깐 나중에는 여유가 생겨 저의 일을 끝내놓고 다른 부서도 함께 도와서 일을 빨리 끝냈으니깐 말이죠. 하지만 한국이랑 많은 문화적 차이와 일하는 면이 다르기 때문에 지금 한국에서 취업해야하는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렇게 일년동안 일을 하다가 갑작스럽게 아내의 비자 가결로 인해서 한국으로 귀국을 해야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회사에는 사표를 써서 내고 퇴사하기 일주일 전 모든 직원에게 작별 인사 저녁 모임을 갖자고 했는데, 처음에는 그렇게 별 반응이 없어 보였어서 별로 안올 것 같아 16명 정도로 테이블을 예약을 잡아놨는데.... 저녁을 먹기 시작한지 30분만에 위의 사진에 있는 사람들이 다 와주었습니다. 생각치 못한 인원에 테이블은 미어 터졌고 저는 너무 행복했어요. 그러고 퇴사뒤 지금은 한국으로 귀국뒤에 백수로 취직 준비하고 있는 로안이랍니다.
종종 뉴질랜드에 있었던 재미있는 이야기도 포스팅해드리고 뉴질랜드 맛집도 포스팅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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